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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신료

parkindresden 2025. 3. 27. 21:40

1. 향신료 (Peppers, Nutmeg and Cloves) 

 

  고기를 굽기 바로 전에 후추와 소금을 적당히 뿌려 문질러 주면, 후추의 은은한 향과 매콤한 맛이 잘 배어 부드러우면서도 감칠맛이 더해지지. 지금은 후추, 넛맥, 클로브 같은 향신료가 값싸고 흔하지만, 냉장고를 사용하고 무역이 발전하기 이전까지는 구하기가 매우 어렵고 비쌌어.  

대항해의 시대 이전엔 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채취되는 여러 향신료를 유럽에 가져오기 위해서는 중동을 지나야 했는데, 육로로 거의 1~2년이 걸려 오는 동안 통행세를 내거나 강탈 당하는 경우도 많고, 중간 상인도 열두 번 이상 거치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 중세 유럽에서 후추 1파운드는 영주에 귀속된 농노가 자유인이 될 정도의 가치였다고 해 (참고로 러시아의 경우, 1861년 농노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인구의 50% 정도가 매매가 가능한 농노(serf)였어). 이 값비싼 교역에서 중동과 유럽을 잇는 관문 역할을 하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 특히 베니스가 부를 축적하게 됐고 이 부를 통해 르네상스(Renaissance, 14-16세기)가 가능했어.

 

항해술 발전과 함께 포르투갈, 스페인 같은 대서양 연안의 해상 강국들이 육로 대신 해상을 통한 향신료 교역을 찾기 시작하면서 '대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 또는 '대탐험의 시대(Age of exploration)'가 열렸어. 더 구체적으로, '대항해의 시대(Age of grand navigation)'는 14세기 포르투갈의 카나리아 제도 탐험을 시작으로, 15세기 서아프리카 해안과 바스쿠 다가마의 희망봉을 거친 인도항로 개척, 16세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로 개척으로 이어졌어. 해상을 통한 무역도 소요 기간은 거의 1~2년 걸리지만 육로보다 안전했고 대량의 향신료을 비교적 안전하게 중간상인 없이 가져올 수 있어 이득이 많았지.  

또한, 멀고 험한 후추교역은 위험성이 높아 투자자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투자 자본 시장과 보험 등이 발전하게 되었어. 

 

 

  향신료가 왜 그렇게 필요했을까?

 

향신료는 냉장고가 나오기 이전에 주로 음식 보존에 사용되었는데 실제로는 보존이 아니라 약간 부패된 음식의 냄새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 같아. 또한, 열대우림에 있는 수많은 해로운 곤충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균 또는 방충 등의 역할을 하는 화합물 들을 갖도록 진화한 향신료는 변변한 약이 없던 시대에 동양의 한의약재 처럼 유럽에서 치유와 건강의 목적으로 귀하게 쓰여졌어.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넛맥(Nutmeg, 육두구)은 작은주머니에 담아 목에 걸고 있으면 중세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흑사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졌어. 포르투갈의 알버커키(Albuquerque)가 1512년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Malacca)를 점거하고 이를 거점으로 포르투칼이 넛맥 무역을 독점하다가, 17세기 중반이후에는 동남아시아를 제패한 Dutch(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가 독점을 이어갔어.  Dutch는 다른 곳에서 넛맥을 재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수출하기 전에 넛맥의 씨를 라임액 (lime, calcium hydroxide)에 담아 싹이 나지 않게 했다고 해. Dutch가 넛맥 생산지인 인도네시아의 룬(Run)을 갖기 위해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 현재의 뉴욕)을 영국에 포기할 정도였다니 당시 넛맥을 독점하는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겠지. 

영국은 이후 싱가포르에서 넛맥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프랑스는 1770년 클로브 씨를 빼내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데. 14세기 고려시대에, 붓 뚜껑에 면화씨를 몰래들여와 따뜻한 옷을 입게 해준 문익점을 다른 나라의 기술과 지식을 가져온 산업스파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고려인의 삶을 개선한 박애주의자라고 해야하나 잠시 고민…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박애주의자가 맞다고 생각해.  

향신료를 독점하기 위한 유럽 열강 간의 전쟁과 약탈이 이어졌던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지는 이제 향신료 생산보다는 유적관광지로 더  알려져있어. 최근에 방문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있던 말레이시아 말라카(Malacca)에는 이제 향신료의 흔적은 많지 않지만 포대와 범선, 교회의 유적들이 과거의 영화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어.       

 

대부분 자연 약재가 그렇듯 넛맥이 직접적으로 흑사병을 방지하지는 않지만, 넛맥에 포함된 아이소유제놀(Isoeugenol)이 흑사병을 옮기는 쥐벼룩을 멀리하게 하는 자연 방충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했을거라 알려져 있어. 향은 완전히 다르지만, 화학구조가 거의 유사한 클로브가 가지고 있는 유제놀(Eugenol)도 나무진이나 잎을 먹어대는 열대지방의 수많은 곤충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든 자연 방충제를 만들어내도록 진화해 왔어.

 

     넛맥(Nutmeg)   –  류마티즘, 위염, 이질, 배알이

                               –  Spice of Madness (최음제)

 

후추의 매콤한 맛은 후추에 있는 피페린이라는 화합물 때문이야. 우리가 후추를 먹으면, 이 화합물이 혀의 미각에 있는 단백질과 수소 원자를 주고 받으면서 화학적으로 반응하고, 이 반응을 우리의 뇌가 매운것으로 분류인식해서 “아! 후추맛이네.” 하고 알아차리지. 

고추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에 있는 아이티에서 처음으로 유럽에 가져갔는데, 우리나라에는 16세기에 들어와 18세기부터 김치에 쓰기 시작했데. 김치의 매운맛이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어. 고추에는 켑사이신 성분이 있어 후추와는 다른 고추의 진짜 매운맛을 내줘.    

     Capsaicin- 고추                                                          Piperine- 후추

 

거의 유사한 두 화합물이 내는 맛은 완전히 다르지만, 모두 침샘을 자극해 소화를 돕고 장운동을 활발하게 도와 줘. 적당량의 향신료는 음식의 풍미를 높이고 맛을 깊게 도와주지. 매운맛은 혀의 미각뿐 아니라 신체의 고통신경으로도 전달되는데, 특히 다른 신체부위보다 손이나 눈을 자극해. 매운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 엔돌핀이 방출돼 만족감을 느끼고, 이 때문에 매운맛은 특히 중독성이 강해.  

 

냉장고의 보급과 빠르고 안전한 무역의 발전으로 더 이상 향신료가 귀하지 않지만, 과거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시작된 나라 간의 경쟁이 탐험과 항해를 포함한 과학, 기술, 지리, 인문, 자본, 시장경제  등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어. 식탁 구석에 놓인 먼지 낀 후추병이 새롭게 보이네. 후추가 이렇게 큰일을 했을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