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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노르망디] 몽생미셸 (Mont-Saint-Michel) (1/3)

'몽생미셸(Mont-Saint-Michel)'의 첫 기억은 1976년에 만든 영화 ‘라스트 콘서트’에서이다. 주인공 스텔라와 리차드가 둑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배경에 신기루처럼 서있다. 새로운 정보를 찾기 어려웠던 시절, 섬(island)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바다에 면한 피라미드 모양의 산 전체에 걸쳐 뾰족한 첨탑을 가진 웅대한 고딕 성당을 위에 두고 중간에 마을 아래로 성을 둘러싼, 둑길 끝에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낯설었던 기억이다. 오래전 영화로, 화질이 좋지 않아 오히려 더 몽상적으로 보였던, 영화 속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은 아직도 익숙하다. 계획은 주차장에서 섬까지 걸어 들어가는 거였는데 무료 셔틀버스를 탄다. 점점 가까워지는 신기루, 광활한 갯벌에 둘러싸인 섬은 생각보다 크..

8장, 반복되는 인과오류 (Post Hoc Rides Again)

이전 연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대학생들의 성적이 비흡연 학생보다 낮다는 조사 통계를 가지고, “흡연이 학생의 성적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담배부터 끊어야 한다.우리는 A 다음에 B가 일어나면 별다른 의심 없이 A가 B의 원인이라 쉽게 생각한다. 이 예의 문제는, 낮은 성적의 학생이 흡연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확대해, 흡연이 성적 저하의 원인이라는 추측이 성급하다는 점이다. 혹시 낮은 성적이 학생들에게 흡연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외향적인 친구와 노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성적이 떨어지자, 담배를 더 피우게 됐을 수도 있다. 그럼 친구를 멀리해야 한다.요점은 여러 요인들이 관계되어 있다면, 하나를 꼭 집어 원인이라 하기 어렵다. 인과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선 세심한 검토가 ..

[프랑스|파리|몽마르트] 사크레쾨르 대성당과 물랑루즈 (2/2)

늘 낭만적이었을 것만 같은 몽마르트의 역사는 사실 훨씬 드라마틱하다. 서울의 남산과 비슷한 상징성을 가지지만, 높이는 절반 정도인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낮은 언덕이다. 그러나 파리 인근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오래전부터 포도밭과 곡물을 빻기 위한 풍차가 있던, 파리의 뒷마당에 있는 작은 텃밭과 같은 곳이었다.19세기 중반, 나폴레옹3세 시절 오스만 남작이 주도한 ‘파리 대개조’ 사업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도심에 거주하던 영세민들이 파리 외곽 몽마르트로 밀려나오게 된다. 모네와 르누아르와 같은 가난한 예술가와 문인들도 세금(특히 술에 부과된)과 규제가 적어 저렴했던 월세를 찾아 들어오면서, 이전부터 있던 자유로운(보헤미안, Bohemian) 정신과 함께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분..

[프랑스|파리|몽마르트] 몽마르트 언덕 (1/2)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 순간(instant)에 잡히는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주요 무대였던 몽마르트는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낭만적이고 친근한 장소로 다가온다. 몽마르트(Montmartre)에 가기 위해 ‘아베스(Abbesses, 수녀원장들)’ 역에 내린다. 1913년에 개통된 파리에서 가장 깊이 지어진 역(station)이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이곳은 지상으로 나가기 위해 170개가 넘는 좁은 회전계단을 올라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굳이 계단으로 올라가는 이유는… 그 좁고 긴 회전계단 벽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천천히 동화 속 다른 세상으로 걸어 올라가면 이제 작은 문이 나올 것 같다. [비디오: 아베스 회전계단] https://youtu.be/..

7장, 애매한 연관성 (The semi-attached Figure)

“근무 시간에 짧은 휴식을 갖는 직원들은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라는 기사를 보고, 당장 “전사적으로 휴식 시간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처구니없는 소리긴 해도, 확률이 그렇다니 언뜻 반박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내용을 더 들여다보니 사망 원인이 흡연이다. 짧은 휴식 시간에 많은 직원이 담배를 피웠고, 그로 인해 사망률이 높아진 거였다. 결국 짧은 휴식이 문제가 아니라 흡연이 문제인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엉뚱한 휴식 시간만 줄어들 뻔했다. 27%의 의사들이 특정 제품의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그 담배가 몸에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사들도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피울 뿐이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는데도, 실제 담배 회사들이 가끔 이런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해 왔다는 건..

[프랑스|파리|루브르] 루브르 박물관 - 리슐리외와 쉴리관의 그림들이 전하는 이야기들 (5/5)

이탈리아는 14~16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을 통한 부(wealth)를 바탕으로 르네상스를 열어 문화의 중심에 있었지만, 17~18세기 대항해시대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VOC)와 이후 영국으로 이어지는 해양 무역을 통한 서유럽으로의 부(wealth)의 이동과 함께 문화의 중심도 옮겨간다.또한 16세기 개신교의 등장으로 이전의 성화보다는 주변의 현실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고, 국가주의와 인본주의가 나타나며 풍경화나 주변 일상을 많이 그리기 시작한다. 화가들에게는 귀족과 상인들의 초상화뿐 아니라, 부유해진 상인들의 집을 장식할 그림의 의뢰가 늘었다.리슐리외관 2층에 있는 16세기경부터 19세기 중반 까지의 소장품들 중 특별한 화가나 그림이 아니더라도, 화가가 그리고 싶었으니 화폭에 담았을 풍경화와 ..

6장, 일차원그림(The one-Dimensional picture) - 시각적 왜곡

한창 키가 자라던 학창 시절엔 ‘꼬맹이’니 ‘꺽새’니 하며 키 가지고 서로 놀리던 기억이 있다. 나이 들어서까지 그런 놀림이 계속되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 꼬맹이와 꺽새는 친구 또는 돈 보따리, 고기 덩이 등의 모습으로 ‘시각적 과장(eye-appeal)’을 사용한 눈속임에 나타나곤 한다. 미국과 로툰디아(가상국가) 목수의 평균 주급을 비교하는 기사를 내려고 하는데 단순히 미국은 60달러, 로툰디아는 30달러라고 숫자만 기사화해서는 너무 단순해서 그래프를 추가한다.간단한 막대그래프(Bar Graph)를 그렸는데 너무 평범해 독자의 주의를 끌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30달러짜리 돈 보따리를 미국은 두 개, 로툰디아는 한 개 들고 있는 그림으로 바꾸려 했는데 위에서 임팩트가 없다고 퇴짜를 놓는다. ..

[프랑스|파리|루브르] 루브르 박물관 - 고대 쉴리관과 리슐리외관 나폴레옹3세 아파트 (4/5)

솔솔 밀려오는 식곤증을 뿌리치고 일어선다. 이제 4분의 1이나 보았나...드농관을 지나 아폴론 갤러리(Apollon Gallery)로 향한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갤러리는 잠정 봉쇄되었다.2025년 10월 19일, 네 명의 복면 도둑들이 대범하게도 아폴론 갤러리 창문으로 침입해 전시되어 있던 왕실의 귀중한 보석 장식품들을 들고 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관람객이 오가는 평온한 오전, 400여 대의 감시카메라와 400여 명의 가드가 무색하게 창문을 뚫고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방범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은 그저 놀랍다. 게다가 도둑들이 보석을 들고 나가는데도 주위에 있던 가드들이 무력으로 맞서지 않았다.무료인 다른 대표적인 박물관들과 달리, 한 해 800여만 명의 관람객에게 22유로나 입장료로 받는 루..

5장, 사실을 왜곡하는 그래프 (The Gee-Whiz Graph)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날씨 확인이다. 몇 월에 가는게 좋을지 알아보기 위해 월별 온도와 강수 통계를 검색해 본다. 화면에 나오는 숫자로 가득한 테이블은 아직도 공포스러울 때가 있다. 학창시절 대수(Algebra)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어린 나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의 수를 추정해 내는게 혼란스러운건 당연한 일이다. 물롣 재미있어하는 너드들도 있었지만.일반적으로 수(number)로 채워진 테이블보다는 글이 낫고, 글보다는 눈에 보이는 그래프가 편하다. 그래프는 정해진 소비자에게 특화된 정보를 주는 가장 직접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다.그래서 우리는 내가 전달하고 싶은 정보가 가장 잘 보여지도록 일부러 그래프를 짜집기하고, 그렇게 우리는 또 쉽..

[프랑스|파리|루브르] 루브르 박물관 - 드농관의 그림들이 들려 주는 이야기들 (3.2/5)

모나리자가 있는 방에서 나오면 좌/우로 연결된 [room 700]에는 ‘낭만주의(Romanticism)’, [room 702]에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작품들을 모아 놓아, 양쪽 방을 오가며 같은 시대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았던 두 흐름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수십여 점의 작품 중 보고 싶었던 5개의 작품과 시간을 보내고 점심 먹으러 간다. 🥪🥐☕ # ‘메두사호의 뗏목(The Raft of Medusa)’은 [room 700]에 있다. 식민지 개척을 위해 서아프리카 연안을 항해하던 Medusa호가 암초에 걸려 1816년 난파했다. 무능한 선장과 상위층은 자기들만 살겠다고 몇 되지 않은 구조선으로 탈출하면서, 150여 명의 하급 선원과 가난한 정착민들이 급조해 타고 있..

4장, 별거아닌 소동 - 신뢰 범위와 백분율(%)의 함정

IQ (Intelligence Quotient) 지능검사는 같은 연령에서 실시한 전체의 평균을 100으로 환산한 비교 수치로 언젠가부터 개인의 지적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대접받기 시작했지만, 보편적인 수치라고 볼 수는 없고 상담가나 교육자들이 참고 자료로 사용하는게 원칙이다. 단짝이었던 두 친구가 언젠가부터 서먹해 졌다. 얼마전 담임 선생님이 재미있다는 듯, 몇 달 전에 치른 IQ 검사 결과를 종례 시간에 알려주어서, 은주는 98, 상연이는 101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학생이 원치 않으면 알려주지 않았지만, 대부분 얼떨결에 알려달라고 한다. 이후 평균 이하인 은주는 약간 주눅이 든 듯 예민해졌고, 상연이는 자신감이 들며 약간의 거만함.이 결과가 자라는 아이들의 자신감에 상처를 주고 인생에 영향을..

[프랑스|파리|루브르] 루브르 박물관 - 드농관의 그림들이 들려 주는 이야기들 (3.1/5)

드디어 모나리자가 있는 1층 드농관에 올랐다. #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Mona Lisa)’는,객관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인중의 하나이다. 주관적으로는 두번째 :) 단정하게 포갠 두손을 앞으로 하고 상대방이 편안하게 비스듬히 앉아, 어느 각도에서도 지긋하고 따뜻하게 눈을 맞추어 준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한, 신비하고 절제된 ‘살인 미소’는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 줄 것처럼 다정하다. 루브르의 미로 같은 통로와 계단을 오르고, 눈길이 머무는 여러 소장품들의 유혹을 어렵게 지나 드디어 [room 711] 앞에 오면, “출구(sortie), 모나리자를 보려면 방의 반대편 입구로 돌아가라”는 안내판을 마주한다.투덜거리며 반대편 입구를 다시 찾아 들어서면 저 멀리..

[프랑스|파리|루브르] 루브르 박물관 - 대리석에 살아있는 이야기들 (2/5)

가장 붐비는 모나리자를 먼저 보기 위해, 입장하자마자 1층에 있는 모나리자 전시 장소로 향했지만, 0층 이탈리아 조각관이 시작되는 (room 403)으로 잘못 들어섰다. 나만 길눈이 없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기저기 길을 잃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방문객 중 거의 80%가 모나리자를 보려고 온다니, 고속도로 출구처럼 박물관 바닥에 “모나리자로 가는 길”이라 색선으로 표시해 달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마주한 두 개의 ‘미켈란젤로의 노예 조각상’.하나는, 뒤로 묶인 손목을 풀기 위해 고통스럽게 뒤틀린 자세로, 몸의 모든 근육이 터질 듯 긴장한 ‘반항하는 노예(Rebellion Slave)’. 운명에 저항하는 영혼이 갇힌 육체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을, 실제 삶에서 우러..

[프랑스|파리|루브르] '루브르 박물관’에 가다 (1/5)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서양미술사를 두 학기 듣고 난 후, 아내는 전문가(^^)가 된 듯 자신감이 생겼다. 잘 모르던 화가와 조각가들의 이름이 익숙해지면서, 뮤지엄을 방문하기 전에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어렴풋이 알던 작품과 작가에 대해 설명해 주는 아내가 멋지다. 그래서 루브르 방문이 더욱 기대가 된다. 한해 800만 명 이상 방문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고, 특히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조각상들, 눈부시게 장식된 궁전, 화려한 왕가의 장식품 등 세계 3대 박물관 중에서도 다양한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다른 사람의 눈으로만 보던 그림을, 온전이 나만의 시선으로 본다는 설렘에 흥분된다. 조급한 마음으로 M1 li..

[프랑스|파리] 프랑스에서의 3개월 _ 들어가며

가방을 샀다. 이제부터 많이 쓸 거라는 핑계로 35리터짜리, 좀 비싼 백팩을 저질렀다.아내는 아직은 마음이 후한 편이다. 같이 이것저것 둘러보며, 비싼 만큼 좋아 보이는 기능과 견고함에 같이 감탄해 준다.푸른색 배낭을 들고 나오다 문득 너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싶어, 계산하기 바로 전에 회색으로 바꾸었다.아내는 나의 마지막 결정에 만족해 한다. 여행자의 복장이 튀는 것은 좋지 않다. 정년을 꽉 채우고 은퇴한 지 1년이 되었다. 한 번도 등 떠밀리지 않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에 내 발로 나왔으니, 열심히 살았다고 도닥여 본다.경주말이 앞만 보고 달리기 위해 안대를 하듯, 좌우를 안보고 살아왔나 싶기는 하다. 몸이 서서히 연륜을 보이고, 기억과 사고의 순발력이 떨어지는 건 내가 제일 먼저 알아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