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기록/'프랑스'에서의 3개월

[프랑스|노르망디] 생말로(Saint-Malo), 오마하 비치(Omaha Beach) (2/3)

parkindresden 2026. 3. 27. 05:08

프랑스 서쪽 노르망디 여행 (몽생미셸 - 생말로 - 캉칼 - 바이외 - 오마하 비치 - 에트르타 - 모네의 가든)

 

  한 시간이 안되는 거리에 나름 독특한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생말로(Saint-Malo)’에서 일박한다.  

생말로는 프랑스와 영국 사이 ‘영국 해협’ 입구에 위치해, 남북으로 이동하는 상선들을 길목에서 잡아 갈취하고, 해외 원정까지 했던 프랑스 정부 공식 사략선(Privateer, Corsair, Pirate, 해적)의 본거지로 이를 통해 16~18세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열받은 영국 해군의 공격을 막기위해, 17세기 루이14세 때 2킬로미터에 이르는 현재 모습의 성곽을 가진 해안 요새가 완성되었다. 

 

해적이라 하면 불법적인 도둑들을 연상하게 되지만, ‘대항해 시대’의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들은 사략 허가증을 주며 민병같은 역할을 하도록 허용하였다. 물론 갈취한 부의 일부는 왕에게 바쳐야 했다. 

15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새로운 항로와 식민지 개척에 뒤진 나라들은, 모험심과 욕망이 강한 민간인들로 구성된 해적선들이 스페인 배를 약탈해 들여오는 보물들이 필요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1세(1533~1603)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공격하고 상선을 약탈해서 왕에게 바친 자금으로 영국 해군의 기반을 마련하게 도운 해적 선장 드레이크(Francis Drake)에게 기사 작위를 주었다.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The Dutch East India Company)’ 설립 자본 뒤에는 허가된 해적의 자금이 있었다. 

프랑스에는 이곳 생말로 출신으로 루이14세때 해군 부사령관까지 오른 트루엥(Rene Trouin, 1673~1736)과 나폴레옹에게서 훈장까지 받은 쉬르쿠프(Robert Surcouf,1773~1827)의 모험담이 전해져 온다. 

대부분 ‘Great Circle’이라 불리는 삼각무역을 통한 노예 무역에도 연관되어, 지금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모험과 탐험을 통해 부를 이루고 적대국을 괴롭혀 자국민들에게는 존경을 받아 온 사람들이다.   

 

돌로 된 좁은 골목과 계단을 올라 성곽 위로 올라가면, 만을 끼고 시원한 바다가 나온다. 간만의 차가 심해 물이 빠지면 요새화된 앞쪽의 작은 섬들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른 아침 파도에 둘러싸인 섬들은 작고 외롭다. 

만조에 들어오는 강한 파도의 힘을 빼 성벽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생말로의 선조들은 수많은 참나무 기둥을 성벽 앞에 박아놓았다. 지금은 식물들의 뿌리로 성벽이 약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침부터 관리인이 성벽을 타며 토치로 자리를 잘못잡은 잡초들을 화형시키고 있다.

생말로 요새내 좁은 길의 정취… - 성벽 잡초 제거 작업

 

바다를 보면서 성벽을 걷는 기분이 색다르다. 성벽에 이어 성안으로 지어진 돌집들과 좁은 골목길. 육중한 성곽 외벽 길에서 보이는 먼 바다와 인근의 작은 섬들이 만드는 원근의 전경. 

바다에 면한 성벽 위를 걷다 보면, 중간쯤에 포진지였던 꽤 넓은 공간 ‘바스티옹 드 라 올란드(Bastion de la Hollande)’가 나온다. 그곳에 세워진 생말로 출신의 두 인물 동상(statue), 한명은 훈장 받은 사략선 선장 쉬르쿠프(Robert Surcouf), 다른 한명은 캐나다를 탐험하고 퀘벡과 몬트리올 등 여러 도시들을 개척한 카르티에(Jacques Cartier)이다. 머나먼 신세계 해적의 모험과 신대륙 개척의 시작점이었다는 생말로인들의 자부심을 담았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넓은 백사장과, 선원들이 훈련하던 바다 수영장이 성벽 아래에 있다.    

계단을 내려가 성 안으로 들어간다. 모서리가 세월에 닳은 투박한 돌로 쌓은 주택들과, 잘 다듬은 돌로 지어진 관공서 사이의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조금 더 넓은 거리로 나오면 버터와 설탕, 소금을 조합한 다양한 특산 과자 상점들이 즐비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전량을 수제로 만들어 수출도 거의 하지 않아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보르디에 버터' 본점이 이곳에 있다. 명성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가게 안에는 박물관처럼 버터 제조 과정을 전시해 놓았다.

미식가와는 거리가 먼 내 입맛에는 버터 맛이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지만, 포화지방이 많다며 평소에는 버터를 제한하던 아내의 특별 허가로 숙소 조식에 나온 보르디에 버터를 마음껏 즐겼다. 따뜻한 바게트에 듬뿍 발라 먹는 버터는 그야말로 고소하다.

 

약탈한 부로 넘친 요새 내의 성뱅상(St. Vincent) 대성당은 규모는 작지만 화려하고,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배와 선원(해적)들의 안전을 비는 내용이 가득하다. 7세기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위에, 12~18세기에 걸쳐 고딕 양식으로 지었다. 이차대전에 파괴된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1972년 재건한 본당에는 캐나다를 발견한 카르티에와 존경받았던 사략선 선장 트루엥(Rene Trouin)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이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이후에도 “죽음으로 사수하겠다”며 성문을 닫고 저항하던 독일군들은 성당을 포함한 도시의 80% 이상이 폭격으로 파괴된 뒤에야 죽지 않고 항복했다.     

성 안쪽 구시가는 서울 덕수궁 정도 크기로, 두어 시간이면 돌아 볼 수 있다. 

지난밤 늦게 저녁을 먹기 위해 헤매던 인적 드물고 희미한 가로등의 좁은 골목길은, 걸을 때마다 돌바닥에서 울리는 둔탁한 소리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늦은 오전, 생뱅상 성문을 빠져나오며 다시 돌아보는 빛바랜 무겁고 견고한 요새. 성 안에서 보낸 하룻밤은 짧은 시간여행을 한 것 같다.       

생말로: 요새의 성벽 - 문위에 물구나무 선 그림이 주는 작은 즐거움 - 보르디에 버터 본점 - 작은 섬에 지어진 성 - 칼칼 앞바다의 굴 양식장과 멀리 수평선에 보이는 몽생미셸 - 사략선 - 성뱅상 대성당 - 성뱅상 대성당 스테인드그라스 - 보르디에 버터를 내놓은 조식

 

  다음 목적지 ‘바이외(Bayeux)’로 가는 길에, 호텔 주인이 추천한 ‘캉칼(Cancale)’에 들러 신선한 굴을 맛본다. 갯벌에 넓게 펼쳐진 굴 양식장과 트랙터로 양식장까지 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해안을 따라 돌로 지어진 모형같은 어촌 건물들과, 이 지역에서 유명한 ‘메밀 갈레트(Galette de Sarrasin)’를 파는 레스토랑들. 

부두가 간이식당에서 굴 한 판과 와인 한 잔을 사 들고 계단에 앉아, 소금맛이 생생한 굴을 맞본다. 먹은 굴 껍데기를 해변으로 던지며, 바다와 굴 양식장과 푸른 하늘이 만드는 여유로운 풍경이 즐겁다.      

 

  바이외에는 이차대전 당시 독일이 가져가기 위해 눈독을 들였다는 ‘태피스트리(tapestry)’가 있다. 1066년 노르만디의 공작이던 정복왕 윌리엄의 잉글랜드(England, 영국) 침략 역사를 70미터 길이의 직물에 짜넣었다. 하지만, 박물관이 개보수로 문을 닫아 27년까지 볼 수 없단다. 아쉽지만, 11세기 경에 지어진 고딕 성당의 단아함과 조용한 소도시의 한가로움을 즐겨보기로 한다. 일주일 휴가 동안 날아와 이번 노르망디 여행을 함께한 작은딸과 오랫만에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이차대전시 연합군(미국, 영국과 캐나다)의 ‘노르망디 상륙작전(operation overlord)’은 인근의 다섯 군데 해변에서 1944년 6월 6일 시작되었다. 그중 가장 치열한 전투와 미군의 큰 희생이 있었던 ‘오마하 비치(Omaha Beach)’에 조성된 미군 전사자 묘역과 기념관을 방문한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의 자유와 자치를 위한 미국의 희생과 역할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슈퍼맨과 마블 영화가 미국에서 나올만 하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미군이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기념관에 들어서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처음 20분에 그려진 ‘피의 오마하(Bloody Omaha)’라 불리는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언덕 위 독일군의 기관총 사격에 숨을 곳 없이 노출돼 덧없이 죽어간 병사들의 이야기, 장비, 작전의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을 나가기 전, 설치된 좁은 백사장 위에 외롭게 거꾸로 세워진 소총과 개머리판에 씌어진 철모의 주인도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텐데라는 안스러운 마음에 숙연해 진다.  

기념관을 나와 독일군의 진지가 있었을 언덕 위에 해변을 조망하는 전망대를 지나 하얀 묘비가 점처럼 늘어선 묘역을 보며, 오랜 평온을 지나 세상이 다시 독선과 극단으로 가고 있는 지금, 이묘역에 잠든 젊은 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되기를 바래본다.

바이외/오마하 비치:  바이외 - 바이외 노트르담 대성당 - 성당 제단 - 오마하 비치 전망대 - 묘역 - 기념관 전시물과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