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14~16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을 통한 부(wealth)를 바탕으로 르네상스를 열어 문화의 중심에 있었지만, 17~18세기 대항해시대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VOC)와 이후 영국으로 이어지는 해양 무역을 통한 서유럽으로의 부(wealth)의 이동과 함께 문화의 중심도 옮겨간다.
또한 16세기 개신교의 등장으로 이전의 성화보다는 주변의 현실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고, 국가주의와 인본주의가 나타나며 풍경화나 주변 일상을 많이 그리기 시작한다.
화가들에게는 귀족과 상인들의 초상화뿐 아니라, 부유해진 상인들의 집을 장식할 그림의 의뢰가 늘었다.
리슐리외관 2층에 있는 16세기경부터 19세기 중반 까지의 소장품들 중 특별한 화가나 그림이 아니더라도, 화가가 그리고 싶었으니 화폭에 담았을 풍경화와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생활화에서 사실적이고 자연스런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room 846]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할스(Frans Hals)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거친 붓 터치로 살아있는 인물을 그려낸 초상화와 풍속화의 대가로,
상인, 귀족, 술꾼, 아주머니와 아이들 등 다양한 인물들의 서로 다른 웃음들이 초상화에 살아있다.
심지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세상 심각한 철학자 #‘데카르트의 초상화’에도 미소가 있다.
헝클어진 머리, 발그레한 볼, 숨김없이 유혹하는 눈빛과 헤픈 웃음이 싫지 않은 #‘집시여인(The Gypsy Girl)’, 즐거워 보이는 #‘루트 연주자(The Lute Player)’의 웃음에 비치는 옅은 비애는 내게만 보이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명화로 알려질 만큼 눈에 띄지 않는 24x21cm 크기로, 덩그러니 걸려있는 그림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The Lacemaker)’은 [room 837]에 있다.
1669년경 그림으로, 시선이 실과 실패를 잡은 손끝에 가도록 초점을 맞추어, 전면의 실타래와 도구와 인물은 다소 흐릿하게 그려졌다.
그의 다른 그림들처럼 사물의 정교한 묘사로 완성도를 높이고,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아래 고요한 몰입을 즐기는 소녀의 미소가 보인다.
자신의 일에 집중한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다.

일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주로 그리고, ‘북유럽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우리에게 알려진 베르메르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빛을 그림에 담아 ‘빛의 마술사’라 불리기도 한다.
그의 그림속 인물들은 햇살만큼이나 차분하고 다정하다.
우리가 조선시대 대표 화가를 떠올리면 김홍도가 생각나듯, 네덜란드의 대표적 화가는 렘브란트로 암스테르담에 가면 어디서든 그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물론 고흐도 있지만.
‘빛과 어둠의 마술사’라 불리며 강한 명암 대비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초상화에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너무 예술적인 초상화에 의뢰인들이 줄고 여러 사정이 더해져 말년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의 얼굴만 돋보이기를 원하는 의뢰인들에겐 ‘뽀샵’하지 않은 사실적인 얼굴과 명암에 차이가 나는 예술적인 초상화가 마음에 들리 없었다.
나이마다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듯 자화상을 그리는데 진심이어서 90여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다. 그중 네점의 자화상이 같은 방 [room 844]에 있다. 뽀얀 피부의 자신만만한 젊은 렘브란트가 초췌하고 지친 노쇠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빛과 어둠은 그대로인데 시간만 흘러간다.


화가이면서도 성공한 외교관으로 바쁜 루벤스는, 지금은 그의 박물관이 된 벨기에 안트워프의 저택을 구입해 대규모 그림 공방을 만들어 수천점의 그림을 그려냈다. 루벤스가 밑그림을 그리면, 팔이면 팔, 다리면 다리처럼 특화된 전문 보조 화가들이 분업으로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여러 언어에 능했고, 화가가 되기 전 인문 교육을 받아 교양이 높은데다가, 왕실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이니 비밀스런 협정이나 교섭에 적합해 외교관으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루브르 [room 801]에는 4미터 높이의 커다란 그림 24점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루벤스의 작품으로, 신화를 바탕으로 루이13세의 어머니를 찬양한 ‘마리드 메디치(Marie de Medici)연작’이다.
프랑스인들에게 사랑받는 왕 중의 하나인 앙리4세가 1610년 암살 당하고, 루이13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을 하게 되었는데, 루이13세가 18살이 넘어서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다 결국 아들에게 물리쳐져 유배된다. 모자 사이니 얼마 뒤 화해해 궁으로 돌아온 마리는 자신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루벤스에게 이 연작을 그리게 한다.
1631년 리슐리외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 현제의 벨기에로 망명한 뒤, 루벤스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다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하고 임종한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딸 다운, 한 여성의 평생에 걸친 대단한 권력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화려한 정치적 야망을 위한 이 연작이, 지금은 그녀의 정적이던 리슐리외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림은 지나칠 만큼 화려하고 압도적이다. 남자들의 근육은 움틀거리고 여인들은 풍만하다.
하지만 지나친 장엄함에 혼미해진 나는 정신 없이 두리번거리다 서둘러 나온다.

루이13세의 왕정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마리 드 메디치와 정쟁을 벌이고,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는 악당으로 묘사된 리슐리외 추기경의
근엄하고 우아한 전신 초상은 [room 828]에 있다.
그리 비열한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다.
바로크 시대 화가 샹파뉴(Philippe de Champaigne)가 ‘뽀샵’을 한걸까, 아니면 유능한 정치가의 본 모습일까?

뜬금없이 내란 재판 판결문에 언급되어, 느닷없이 인지도가 높아진 17세기 영국 왕 찰스1세는 [room 853]에 있는 다이크(Anthony van Dyck)가 그린 # ’사냥하는 찰스1세(Charles I at the Hunt)’에서 만날 수 있다.
화려한 예복을 입은 일반적인 왕의 초상화와 달리, 평상복에 넓은 기사 모자를 쓰고 진주 귀걸이를 한 왕은 위엄과 권위가 가득한 모습이다. 키가 163센티미터로 비교적 작은 왕이 커 보이게 하기 위해 다이크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로 주위의 시종과 심지어 복종의 자세로 고개를 숙인 말까지도 왕보다 작게 그렸다.
찰스1세는 영국의 마지막 전제 군주로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와의 내전에서 패해 처형당한 비운의 왕이다.

[room 912]에서 라투르(Georges de La Tour)의 #‘사기 도박꾼(The Cheat)’을 만날 수 있다.
17세기 프랑스 화가, 빛과 그림자로 긴장된 순간을 극적이고 재미있게 그려냈다.
오른쪽 자기 패에 몰입한 화려한 치장의 젊은 귀족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세 명의 사기꾼들의 은밀한 시선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나 어리숙하다.

그가 표현한 인물들의 얼굴엔 특이한 단순함이 있다. 다른 동시대 바로크 화가들과는 다른, 현대의 만화 캐릭터를 보는 듯하다. 같이 전시된 라투르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이 느낌이 거의 확신이 된다. 17세기에, 21세기에서나 볼듯한 단순하고 간결하게 인물을 표현 했다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조선시대 궁터 발굴지에서 휴대전화가 나온 듯한 기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아서일까, 혹시 누군가 시간 여행을 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2층의 거의 모든 미술품 전시실을 돌아 나올 때쯤 무언가 빠진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모네나 세잔, 마티스, 르누아르, 드가 같은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 작품이 몇 점 있을 뿐이다.
더욱이 고흐, 피카소, 샤갈 같은 대가들의 그림은 프랑스인이 아니어서 일부러 전시하지 않았나?.
아무런 설명이 없다…
프랑스는 시대와 지역별로 소장품을 여러 미술관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그중 루브르는 고대부터 1848년 까지의 작품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볼 수 없다.
1848년 부터 1914년까지의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작품들은 대부분 루브르에서 멀지 않은, 옛기차역을 개조해 1986년 문을 연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이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1914년 이후 미술품은 현대 미술관인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퐁피두 센터는 2030년 까지 보수 중이어서 이번 여행에선 방문할 수 없었다.
쉽게 지루해지는 우리는 늘 새로운 경험을 찾고, 이 타고난 습관을 통해 삶은 풍부해 진다.
여행은 집 주위 가벼운 산책부터 바다 건너 프랑스까지, 나의 오감으로 느끼는 현재(3차원)의 경험을 준다. 뮤지엄 방문은 여기에,
갈 수 없는 과거로의 시간의 벽을 넘는 4차원의 경험을 더해 상상의 폭을 넓혀 준다.
틀에 박히지 않은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사고가 AI시대에 살아남는 길이고, 박물관을 찾을 이유가 되기도 한다. 파리엔 박물관이 많다 :)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 ‘오르세 미술관’을 예약해 놓고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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