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기록/'프랑스'에서의 3개월

[프랑스|노르망디] 에트르타+루앙대성당+지베르니 모네의 가든 (3/3)

parkindresden 2026. 6. 15. 11:36

  파리 서쪽, 대서양에 면한 노르망디 지역에는 인상주의의 문을 열고, 나아가 추상화의 시작까지 영향을 미치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던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그 중 세 곳을 찾아본다.

 

  첫 번째 목적지는 몽생미셸에서 북동쪽으로 3시간 거리, 영국해협에 면한 작은 어촌 ‘에트르타(Etretat)’다.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모양의 아치로 더욱 인상적인 90여 미터 높이의 석회암 절벽(Chalk Cliff)으로 유명하다.

에트르타 @Google Map

 

조용하던 작은 어촌 에트르타는 19세기 들어 노르망디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19세기 중반 휴대용 튜브 물감이 상용화되면서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 화가들은 석회암 절벽과 부서지는 파도와 변화무쌍한 구름을 화폭에 담기 위해 에트르타를 찾았다. 그림에 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라기 보다는 쉽게 그리기 어려운 풍광이란 생각이 든다.

당시 미술계는 사실주의가 주류였고 인상주의가 시작되던 시기로 에트르타의 자연을 담은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와 모네의 50여 점의 에트르타 연작을 비교해 보면 두 화풍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진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역활이 줄어든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려 한 사실주의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내면과 주관의 모습을 화가가 ‘창문을 만들어’ 보여 주는 현대 추상미술의 중간 지점에, ‘창문 밖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상주의가 있다. 사진이 담지 못하는 자연스러움과 풍부함을 주면서 지나치게 자의적인 추상미술과 다른 우리 내면의 빛과 색의 떨림을 담고 있다. 

에트르타를 배경으로 그림 그림들, 사실주의 - 인상주의 - 추상미술 초기의 구상화

 

그 유명한 에트르타 가는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한참 지나 급한 언덕길이 나온다. 어느 순간, 내려가던 좁은 시야 너머로 언덕 아래 하얀 조개처럼 아늑한 해안 분지에 숨어있는 작은 어촌이 눈에 들어온다. 등대를 세워 놓은 듯 바다로 튀어나간 거대한 아치형 바위 '다발절벽(Falaise d’Aval, 아래쪽 절벽)'과 '다몽절벽(Falaise d’Amont, 위쪽 절벽)' 사이에 멀리서도 해안을 따라 만들어 놓은 길지 않은 보드워크가 보인다.   

늦가을 월요일 아침이어서인지 관광지답지 않게 조용하고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한적한 보드워크에 올라 모네와 여러 화가들이 보았을 풍경을 찾아 사진에 담아 본다. 

어떤 풍경은 그림이 전해 주는 느낌이 직접보는 것보다 더 풍부할 때가 있는데, 구름 낀 우울한 날씨여서인지 이곳의 첫인상이 그렇다. 조각진 풍경은 아름답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조금 번잡하다.  

굵은 자갈 해변과 가까이 들어온 거칠고 깊어 보이는 수심은 물놀이를 하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지만, 해변 한쪽에 서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다발절벽에 오르기 위해 서쪽 가파른 경사를 오른다. 그리고 중간쯤 올랐을 때, 거친 바람과 함께 만나게 되는 골프장. 1908년에 만든 골프장의 몇몇 홀은 절벽 능선을 따라 돌아,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조여든다. 바람이 세서 공이 제대로 날아 갈까나 싶다. 구력과 상관없이 초보 수준을 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외려 이런곳이 매력적이다. 

바람이 거친 다발절벽 위에 서면 '만포르트(Manneporte)'의 우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 마주하는 세 번째 숨은 아치형 절벽이다. 70여 미터의 ‘바늘바위(L’Aiguille)’는 너무 가까워 잘 보이지 않는다. 절벽 능선을 따라 산책길을 더 올라 바늘바위의 크기를 확인해 보려고 했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 안전을 위해 내려간다.

 

에트르타 인근 도로:  https://www.youtube.com/watch?v=04g3_SBpevQ

에트르타 보드워크: https://www.youtube.com/watch?v=UPRPDUGmYSI&pp=0gcJCUELAYcqIYzv

에트르타 다발절벽:  https://www.youtube.com/watch?v=lHyjcbc02BU

다발절벽

 

두 번째 아치형 절벽인 북쪽의 다몽절벽 언덕 위로 오른다. 이곳에 있는 19세기 말에 지어진 배를 닮은 소박한 예배당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Notre-Dame de la Garde)’는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했지만, 언덕 위 거센 바람을 홀로 맞고 있는 작은 교회는 거친 바다로 나가는 선원들의 안위를 기도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인 것 같아 잠시 애틋했다. 

교회를 거쳐 더 올라가면 비행기 모형을 한 ‘눙게세르 에 콜리(Nungesser et Coli)’ 기념비가 있다. 처음엔 단순한 콘크리트 바닥인 줄 알았는데, 꼬리 쪽에서 바라보니 비행기 모양이다. 1927년 ‘백조(L'Oiseau Blanc)’라 부른 비행기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에 도전한 두 비행사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로, 미래를 위한 도전과 모험에 삶을 걸었던 사람들의 희생을 우리는 이렇게 기억한다.  

다몽절벽

 

인근에 에트르타 정원(Jardins d’Etretat)은 초현실주의적 양식의 정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산하고 음침한 날씨에 왠지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영국에 셜록 홈즈가 있다면 프랑스엔 괴도 뤼팽이 있다. 작가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 1864~1941)이 이곳에 머물며 1905년부터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시작한 집, ‘르 클로 아르센 뤼팽(Le Clos Arsene Lupin)’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지만 아쉽게도 월요일 휴관. 에트르타를 배경으로한 대표작이 ‘기암성(L’aiguille creuse)’으로 다발절벽 옆 바늘바위에 프랑스 왕가의 보물을 숨겨놓은 비밀 동굴로 들어가는 단서가 있다. 

뤼팽 시리즈의 성공과 달리 순수문학을 지망했던 작가는 오히려 뤼팽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작가는 행복했을까? 많은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넷플릭스의 ‘뤼팽’ 시리즈 5회 일부가 에트르타에서 촬영되었다.          

 

  두번째 방문지는 노르망디 지방의 수도인 ‘루앙(Rouen)’에 있는 ‘루앙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ouen)’이다. 그리 규모가 큰 도시는 아니지만, 선박이 드나드는 센(Seine)강을 따라 산업화 되어있는 지방의 수도답게 진입하는데 교통체증이 심하다. 하지만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자갈로 포장된 좁은 포장길과 전차길을 어렵게 돌고 돌아 찾은 중세 골목길과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들게한다.

모네가 미묘하게 변화하는 빛의 색을 표현하는 연구를 위해 선택한 대상이 12세기 부터 800여년의 긴 세월 증축된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루앙대성당이다. 그는 레이스에 수놓은 듯 빈틈없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화려한 성당의 정면 외벽을 고정된 스케치북 삼아, 하루의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외벽에 반사되어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자연의 빛을 1890년 초반 30여점의 연작으로 남겼다. 지금은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지만 ‘오르세 미술관’에서 다섯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루앙대성당은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성당으로 높은 천장 때문인지 내부는 다른 성당보다 더 장엄해 보인다. 그 높은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내부의 나무줄기 같이 크고 견고한 기둥들과 계단들이 눈에 띈다. 

성당 옆 자갈길 골목들을 따라 돌다가 뜬금없이 자리한 영국식 티하우스를 발견하고 잠시 영국 분위기로 갈아탄다.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친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 다툼으로 인해 백성들만 고생한 백년전쟁의 주무대였던 노르망디에 남은 영국의 흔적인가?     

루앙은 백년전쟁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가 1431년 영국군에 잡혀 화형당한 곳으로 그를 기억하는 성당과 박물관들이 있다.

 

루앙대성당:  https://www.youtube.com/shorts/U8-jeGPxkzM?feature=share

루앙대성당 전면과 구도심 거리

 

  파리로 돌아오는 길, 이번 여행의 세 번째 장소인 모네의 정원. 

처음 방문은 낯설어 허둥지둥 사진 찍기에 바빴는데, 이후 다시 방문했을 때는 어느새 익숙함에 모네가 바라보았을 잔잔한 물결에 부서지는 햇살과, 가을에 빛나는 자연색들의 대비와, 다정한 바람의 흔들림을 느껴 보려는 여유를 가진다. 게다가 주인이라도 된 듯, 분주한 다른 관광객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고 웃는다.    

에트르타 가는 길도 그랬지만, 고속도로를 나와 시골길을 오랫동안 지나 작은 동네에 들어서면, 일방 통행으로 여러번 서야하는 좁은 길들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가끔 의심이 들게 해 구글맵의 목적지 주소를 다시 확인한다. 한국처럼 자동차 전용도로들이 곳곳에 걸쳐 있는 것이 아니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장소라 해도 접근이 어려운 곳이 많다. 아니면 빠른 길만 찾아주는 구글맵이 편한 길 놔두고 가까운 시골길만 알려주는게 아닌가 싶기도하다. 

 

모네의 정원 가는 길: https://www.youtube.com/watch?v=XglL2NdPMcM

 

모네의 정원과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공장 건물이 있는 소도시를 가로지르는 센강을 건너면 ‘지베르니(Giverny)’가 멀지 않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담쟁이덩굴이 오르는 평범해 보이는 모네의 2층 건물 첫인상은, 아직은 평범하다.

하지만 건물을 통해 안뜰로 들어서면, ‘클로 노르망(Clos Normand, 노르망디의 정원)’이라 부르는 직사각형으로 구획된 꽃정원에 수많은 가을 꽃들이 만개하다. 모네는 이곳을 그림을 그리기 위한 살아 있는 정원으로 만들기 위해 그림의 구도와 색을 고려해 식물의 종류를 고르고 희귀한 꽃씨를 직접 뿌려 가꾸었다고 한다. 늦가을임에도 아이리스, 달리아, 국화, 들장미들이 화려하다. 그냥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라 예술로 전이된 모네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하다. 요즘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규모의 잘 정리된 꽃정원이 많아 외려 자연스럽게 잡초와 섞이고 무성하게 자라 자칫 정리되지 않아 보이는 순수한 모네의 정원이 친근하다.

모네 정원의 꽃정원 '클로 노르망(Clos Normand)'

 

꽃정원의 화려한 자연이 주는 색채의 감동이 잦아들면, 길 건너에 있는 워터가든(Water Garden)으로 향한다. 모네 생전에는 도로와 함께 철도가 있었다는데 이젠 도로를 건너지 않고 지하도를 만들었다. 

모네는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수련과 등나무, 버드나무, 대나무 등의 식물들과 1895년에 완성한  일본식 다리로 동양풍의 정원을 만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키운 수련이 “어느날 경이로운 계시처럼 모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후엔 수련 이외에 다른 대상을 그리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곳이 모네가 후기 30여 년간 추구했던 자연의 인상(impression)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1899년 그림 ‘The Water Lily Pond, Green Harmony’엔 다리와 수련의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하지만 1912년 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백내장으로 윤곽과 색 구별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의 후기 작품(~1920)엔 점차 윤곽은 사라지고 사물의 자취만이 자연 속에 녹아들었다. 

천천히 오솔길로 이어지는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장난하는 호수 주변을 따라 돌며 모네의 그림속으로 들어가 본다.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면 잠시 호수 옆 대나무 숲으로 가려진 개울 옆 벤치에 숨는다. 호수엔 그림처럼 수련이 만개하진 않았지만 어두운 한쪽에 빈배와 무성한 늦가을의 단풍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색으로 채색된 배경, 주변 넓은 농지를 달리던 바람이 무성한 숲에 잦아들어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희롱하는 모습이 모네의 그림과 대비되며, 그림 속에 들어와 있다는 즐거움. 

 

모네의 정원, 워터가든:  https://www.youtube.com/watch?v=wzdMILlR8eU

모네 정원의 워터가든

 

모네는 단순한 직사각형의 2층 농가에 1883년에 이사와 1926년까지 거주했다. 사후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꽃정원은 잡초밭이 되고 워터가든은 뻘로 변해 방치 되었던 곳을 1966년 모네의 아들이 프랑스 미술원에 기증한 뒤 오랜동안 집과 정원을 복원하는 시간을 거쳐 1980년에야 다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문을 열었다.      

원래 농가의 헛간 자리에 만든 작업실은 모네가 자신의 일생에 걸친 화가로서의 여정이 담긴 그림들을 뺴곡히 걸어 놓고 그 기억들을 화보처럼 되새기던 곳으로 당시의 사진대로 복원되어 있다. 

집 안의 여러 방들은 각각 개성있는 테마로 색칠되고 꾸며져 있어서 역시 화가의 집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식당은 흰색 바탕의 푸른 타일을 입힌 벽과 구리 조리 기구들이 정돈되어 있어, 음식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꽃정원을 내다보며 요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밝은 노란색으로 깔맞춤한 벽과 장식장들, 도자기와 그림으로 장식된 다이닝룸은 창문밖 장미 아치를 거쳐 들어온 햇빛을 실내에 잡아 놓은 듯 하다.

눈에 띄는 것은 모네가 수집해 벽에 걸어 놓은 일본 판화들이다. 엄청 많다. 17세기 중국의 도자기를 시작으로 유럽의 상류층이 빠져든 동양의 신비함과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은 1850년대 일본이 개항하면서 중국에서 일본으로 넓혀진다. 특히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의 목판화와 같이 만화 같으면서도 날카롭고 극적인 선이 살아있는 일본의 그림들은 유럽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모네는 200여점이 넘는 일본 판화들을 수집했다.                   

조용하고 행복했던 모네의 말년의 생을 느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모네의 정원은 11월에 문을 닫아 4월에 다시 연다.        

모네 하우스

 

  모네가 바라보고 담으려 했던 자연의 한 장면을 같이 경험한다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다. 매 장소마다 “아, 이것이 모네가 보았던 찰라의 순간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다시 떠올리면, 이제 내 기억이 보태져 대상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하다. 그만큼 내 기억의 폭이 조금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