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기록/'프랑스'에서의 3개월

[프랑스|파리|루브르] 루브르 박물관 - 대리석에 살아있는 이야기들 (2/5)

parkindresden 2026. 1. 25. 15:05

  가장 붐비는 모나리자를 먼저 보기 위해, 입장하자마자 1층에 있는 모나리자 전시 장소로 향했지만, 0층 이탈리아 조각관이 시작되는 (room 403)으로 잘못 들어섰다. 

나만 길눈이 없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기저기 길을 잃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방문객 중 거의 80%가 모나리자를 보려고 온다니, 고속도로 출구처럼 박물관 바닥에 “모나리자로 가는 길”이라 색선으로 표시해 달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마주한 두 개의 ‘미켈란젤로의 노예 조각상’.

하나는, 뒤로 묶인 손목을 풀기 위해 고통스럽게 뒤틀린 자세로, 몸의 모든 근육이 터질 듯 긴장한 ‘반항하는 노예(Rebellion Slave)’. 

운명에 저항하는 영혼이 갇힌 육체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을, 실제 삶에서 우러나온 듯 실감 나게 표현한다.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교태를 부리듯 풀어진 근육과 환각에 빠진 표정의 ‘죽어가는 노예(Dying Slave)’.

죽음으로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영혼의 환희를 표현한다. 

어느 한순간의 고뇌와 희열을 돌 속에 가두어 놓은 미켈란젤로의 조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근육과 선명한 핏줄이 경이롭다.

 

이탈리아 밖에서 미켈란젤로의 원작을 만나긴 쉽지 않다. 

16세기초,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무덤에 장식할 12개의 조각상을 의뢰 받았는데, 계획이 바뀌어 중단된 미완성 작품들이다. 미켈란젤로의 친구가 프랑스로 망명하며 가져왔다고 한다.  

완성된 작품이 아니어서, 가까이 보면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끌(chisel) 자국이 선명하다. 

큰 돌덩이에서 형상을 파내고 아직 남아 있는 부분이,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여운을 준다.  

 

계획한 12개의 조각상 중 고통과 자유를 먼저 시작해서, 지금 우리는 미완성이지만 완성작과 다름없는 감동을 주는, 오히려 미완이어서 몰두가 되는 두 극단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고통과 자유중 한 쪽에서 차례로 12개의 조각상을 진행 했다면 다른 극단은 볼 수 없었을게다. 

이 두 조각상은 영혼에 대한 이야기 이지만, 근육이 살아있는 이상적인 완벽한 사내의 모습으로 성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반항하는 노예(Rebellion Slave)/wikipedia
죽어가는 노예(Dying Slave)/wikipedia

 

  숲에 들어온 듯 늘어선 많은 작품 하나하나에 감동하며 시간을 보낼 수 없으니까.

아름답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조각상들은 눈도장만 찍으며,

# ‘큐피드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Psyche Revived by Cupid's Kiss)’로 간다. 

이탈리아 조각가 ‘카노바(Antonio Canova)’가 1793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이상적인 젊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작품을 360도로 빙 돌아보면, 큐피드의 환을 이루며 감싸는 왼팔과 이어지는 키스, 발레리나가 사랑의 완성을 표현하는 듯 두 팔을 위로 올려 타원을 만드는 프시케, 벗은 남녀의 자연스런 곡선이 만드는 뒷모습, 작은 발가락 까지도 아름답다. 

프시케 발 쪽의 손잡이는 회전 기단 위에 놓고 돌리며 관람하는데 쓰여졌었다.    

 

아주 먼 옛날, 한 왕과 왕비에게 세 명의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는데, 특히 막내 공주가 아름다워 시기심이 든 비너스가 아들 큐피드를 보내 벌을 주려했지만, 큐피드는 오히려 프시케와 사랑에 빠진다. 

비너스의 계략으로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된 공주, 큐피드의 간절한 키스, 절절히 사랑하는 큐피드의 품에서 막 잠에서 깨어난 프시케. 

시련을 극복한 사랑의 완성과 그 장면을 이토록 지독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카노바는 어느 별에서 왔나싶다.    

 

미켈란젤로가 보여주는 거칠고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카노바는 매끈한 피부에 이상화된 신의 몸과 구도를 보여준다. 

이탈리아 외교관으로도 활동해, 나폴레옹이 탈취한 소장품 반환에 애를 썼다.

큐피드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Psyche Revived by Cupid's Kiss) - 앞모습
큐피드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Psyche Revived by Cupid's Kiss) - 뒷모습

 

  내친김에 같은 층에 있는 로마와 그리스 조각관으로 직진한다. 

‘쉴리관(Sully Wing)’ (room 345)에는 루브르에서 만나야 할 세 명의 여인 중 하나인,

#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그리스 Aphrodite of Melos)’가 있다.  

2미터 키에 두개의 대리석을 허리 부분에서 연결한 비너스 상은 기원전 2세기경에 만들어졌다. 1820년 밀로스 섬에서 부서진 조각으로 발견되었고, 오스만 제국(터키) 정부로부터 구매해 루이 18세에게 보내졌다.

오랜 세월 방치돼 피부에는 긁히고 찔린 상처가 있고, 팔과 귓볼 등 못찾은 여러 부분 중 아랫입술과 오른발의 발가락 등 일부만 최소한으로 복원되었다. 

남아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그리스 원본 대리석 조각상이다.

그리스인들은 석상보다는 청동상을 주로 만들었고, 그리스 예술과 문화를 추구했던 로마인들은 이 청동상을 이태리 대리석으로 복제해 집과 정원을 장식했다. 많은 그리스 청동상은 이후 무기나 동전으로 녹여져 없어지고, 대리석 복제품이 살아남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간신히 하반신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튜닉(tunic)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S자로 비튼 몸, 황금비의 팔등신 몸매를 드러내고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듯한 무심한 표정, 길고 부드러운 목선이 아름답다. 

팔이 없는 조각상에 시선은 오로지 몸매에 머문다.

비튼 몸의 유려한 곡선을 따라 천천히 조각상 뒤로 돈다. 비너스의 등에 깊고 길게 파인 움직이는 척추선이 드러난다.

햇살을 받아 차갑고 하얗게 빛나는 대리석 피부. 

엉덩이가 만나는 부분의 골이 유혹적이라고 생각하며 서 있다가, 문득 앞에서 보고 있는 수많은 관람객의 시선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멋쩍어진다. 

내가 “살아 움직이고 숨 쉴것 같은 여인” 이라고 하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조각가 로댕이 그렇게 말했다하니 진짜 손을 대면 곧 살아날 것 같다. 

현실을 넘어 이상적인 인간의 조각상을 추구했던 그리스인은 이미 기원전에 예술과 조각 기술의 완성을 이루었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그리스 Aphrodite of Melos) - 앞모습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그리스 Aphrodite of Melos) - 뒷모습

 

  눈이 닿는 곳곳에 그리스와 로마 조각상들과 유물들. 각각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가끔은 프랑스어로만 적힌 작은 글씨의 설명 표식을 읽기는 피곤하고, 오디오 가이드는 느린 설명에 마음이 조급해져 안듣게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을텐데, 들어 줄 체력과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 

 

여기서 쉴리 관을 따라 돌면 나오는 고대 이집트 유물들은 미루어 두고, 되돌아 나오는 길에 몇몇 조각상들이 눈길을 잡는다. 

(room 348)에는, 

#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Sleeping Hermaphroditus)’가 있다. 

그리스 청동상을 로마 시대에 대리석으로 복제한 것으로, 1618년 발굴한 인물상은 1620년 베르니니(Bernini)가 조각한 버튼 장식이 있는 침대위에 놓여있다.

우윳빛 윤기가 흐르는 침대와 베개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편안해보인다. 

얼굴을 돌려 반쯤 엎드려 잠든 나체의 뒷모습, 아름다운 선이 살아 있어 누구라도 첫눈에 유혹에 빠질듯한 여성이다. 

앞모습을 보기 위해 뒤로 돌아가며, 눈길이 눌린 여성의 가슴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다 화들짝 놀란다.

욕이 나올뻔 했다. 자웅동체인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아직도 우리를 놀래킨다.

그리스인들은 양성으로 분리되기 이전의 인간을 완성된 인간으로 생각해 그 경계에 있는 존재인 양성의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만들어 완전한 인간을 형상화 했다. 

그리스인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던 음과 양으로 분리된 세상에 사는 현재의 나는 불편하다.  

 

같은 방에는 로마의 미의 여신 비너스(Venus, 그리스 Aphrodite)를 따르는

#‘삼미신(The Three Graces, Les Trois Grâces)’ 조각상이 있다. 

빛남(아글라이아, Aglaea)과 기쁨(에우프로시네, Euphrosyne), 풍요(탈리아, Thalia)의 세 여신이 서로

우아하고 가벼운 접촉을 하며 서 있다. 

뒤돌아 있는 가운데 여신 양옆으로 정면을 향한 두 여신을 세운 독특한 구도다.

여기선 나체의 세 여인이 아니라,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조화를 느껴야 한다. 

그리스 시대 청동상을 2세기경 로마 시대에 대리석으로 복제한 조각상이다.

삼미신(The Three Graces, Les Trois Grâces)

 

# 방의 중앙에 ‘베르사유의 디아나(Diana de Versaille)’가 있다.

로마의 사냥의 여신 디아나(Diana, 그리스명 아르테미스 Artemis)는 같은 방에 전시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여러 나체의 여신상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전신을 가린 튜닉을 입고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 왕국 아마존의 여인들 처럼 늠름하고, 적극적이며 역동적인 포즈로 사냥을 한다. 포획된 사슴은 여신의 기개에  눌려 애처롭다.

베르사유의 디아나(Diana de Versaille)

 

# (room 407)에 있는 ‘니오비드 크라테르(The Niobid Krater)’는 기원전 5세기경 포도주와 물을 섞는 단지로 사용되었는데, 여기 그려진 아르테미스(Artemis, 로마 Diana)는 쌍둥이 오빠 아폴론(Apollo)과 함께 니오베(Niobe)의 일곱 자녀를 죽이는 모습으로, 위에 로마시대의 디아나보다 더욱 전투적이고 가차 없는 여성상을 보여준다.  

니오비드 크라테르(The Niobid Krater)/wikipedia

 

 

  그리스인들은 청동상이든 대리석이든 놀랍도록 완성된 예술과 조각 기술, 뛰어난 철학자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활은 아직 고대 사회로 힘으로 약탈하고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던 시대였다. 

올림픽 선수들은 모두 나체로 힘과 기술을 겨루었고, 가장 이상적인 근육질 남성의 나체를 조각상으로 만들어 완성된 남성상을 고취시켰다. 

반대로 일반 여성은 나체로 표현하지 않았다. 다만 그 자체가 완성된 존재인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들은 남성과 같이 나체로 구현하였다.

그래서 나체인 그리스 여성 조각상에는 거의 여신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던 로마는 그리스 청동상을 복제한 석상들로 집과 정원을 꾸몄고, 자연스럽게 나체 조각상들이 이어졌다.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그리스 시대의 이상형이 바뀌고 사회는 복잡해졌으며 종교적 도덕성이 강화되면서 예술에서 나체가 사라졌다.

바티칸 박물관의 야외 회랑에 전시된 로마 시대 남성 조각상들의 남성 부분을 제거하거나 덮은 것으로 대표된다.

그리스에서 여신의 나신이 허용되었듯, 성화에 성모 마리아가 가슴을 드러내고 수유하는 모습은 오히려 예수님이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으로 허용되었지만 이마저도 16세기 들어 금지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조각과 회화에 나체가 다시 등장하는데, 고대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억압된 엉큼한 에로티시즘을 수줍게 표현하기 시작한다.

고대부터 19세기 까지, 거의 대부분의 조각가와 화가들은 남성 이었고 작품을 의뢰하는 사람도 남성이었다는 점에서, 남성의 나체에는 늘 과시와 허세가 들어있고, 여성의 나체에는 유혹과 욕망이 묻어있다.           

  

  드농관의 다루(Daru) 계단으로 간다. 

이곳에는 루브르에서 만나야 할 두 번째 여인이 계단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20년 전 처음 루브르를 찾았을때, 다른 기억은 모두 아물아물해도 이 여인이 주었던 강렬한 인상은 잊히지 않는다.   

# (room 703) 1층으로 오르는 계단 위로 장엄하게 솟아 있는 3미터의 조각상,

올라서 있는 뱃머리까지 하면 5미터가 넘는 ‘승리의 여신상(사모트라케의 니케, The Winged Victory of Samothrace, Nike of Samothrace)’은 압도적이다.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며 뱃머리에 내려앉는 순간, 강인한 날개를 펴고 균형을 잡기 위해 약간 상체를 틀었다.

가슴 아래에서 벨트로 묶은 상체의 얇은 튜닉이 폭풍우에 젖어 몸에 달라붙으며 드러난 매끈한 배꼽 위로, 투명한 옷감이 놀랍도록 생생하게 드러난다 (과장된 묘사가 아니라, 실제로 옷감이 눈으로 느껴진다).

단단한 왼쪽 다리를 드러낸 채, 하체를 감싼 두꺼운 튜닉은 거센 바람에 펄럭인다.

오늘도 ‘승리의 여신’은 각자의 운명을 헤쳐나가는 강인한 우리에게 위안과 용기를 준다. 

 

기원전 2세기, 에게해 동북쪽 사모트라케 섬에 있던 조각상은 세월이 흘러 땅속에 묻혀 사라졌다가, 주변에 고대 조각 파편이 많다는 말을 들은 프랑스 외교관이 정부 보조를 받아 1863년 발굴해 냈다.

발견된 118개의 조각은 프랑스로 보내져 맞추어 졌다. 팔의 일부는 추후에 발견되어 조각상 옆에 전시되고 있다.

1880년에 만들어 붙인 오른쪽 날개와 왼쪽 가슴을 제외하면, 다른 발견하지 못한 머리, 팔, 양발을 포함한 많은 부분들은 복원하지 않은 발견된 모습 그대로다. 

그리스인들은 보이는 부분에만 신경써서 구조상 눈에 안띄는 조각상의 오른쪽 뒤편은 덜 정교하다.    

       

계단을 오르면 구석에 작은 모형의 ‘승리의 여신상’을 파는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이니, 지친 우리를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시대를 초월한 대단한  아이콘이다. 

승리의 여신상(사모트라케의 니케, The Winged Victory of Samothrace, Nike of Samothrace)
승리의 여신상(사모트라케의 니케, The Winged Victory of Samothrace, Nike of Samothrace)

 

이제 루브르에서 만나야 할 마지막 세번째 여인인 모나리자를 만나러 드농관 1층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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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0층 가이드 /@Louvre Museum Map